Chapter 01

신고는 늘었지만 학대는 줄었다
숫자 뒤에 감춰진 구조

6월 15일은 노인학대 예방의 날이다. 노인학대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신고 건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충청권 요양현장에서는 역설적인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신고는 늘었는데, 실제 학대로 인정되는 사례는 오히려 줄었다.

노인학대 신고·인정 현황 그래픽
▲노인학대 신고·인정 현황 (그래픽: 충청투데이 김수연 기자 / 출처: 대전노인보호전문기관)
대전 노인학대 신고 접수 · 인정 사례 비교
출처: 대전노인보호전문기관 (2025년 6월 발표)
2023년
신고 접수
599건
학대 인정
91건
2024년
신고 접수
620건
학대 인정
71건
2024년 학대 인정 71건 — 행위자별 분류
출처: 대전노인보호전문기관 (*봉복 집계, 이하 동일)
73
총 건
배우자
가정 내 학대 1위
28건
자녀
가정 내 학대 2위
25건
기관 (요양시설 등)
배우자·자녀보다 적음
20건

※ 실제 학대 인정 사례(71건) 중 요양시설 등 기관 발생은 20건으로, 가정 내 배우자(28건)·자녀(25건)보다 적다. 그럼에도 요양현장을 향한 학대 의심 신고는 증가 추세다.

신고 접수 건수는 늘었지만 실제 학대 인정 사례는 오히려 줄었다. 그 사이의 공간이 요양현장을 무너뜨리고 있다.
Chapter 02 — 르포

"발길질도 감수합니다"
대전 요양원 현장을 가다

대전 요양원 현장 — 사회복지사가 어르신과 노래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사회복지사가 한 어르신과 함께 노래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오민지 기자

6월 10일 찾은 대전의 한 요양원. 어르신들이 머물고 있는 층에 들어서자 경쾌한 노래소리가 흘러나왔다. 사회복지사는 인지 기능이 저하된 어르신들과 눈높이를 맞춰 노래를 부르고 박수를 쳤다. 프로그램이 끝나자 한 어르신은 "식사도 잘 나오고 요양보호사들도 친절하다"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그러나 평온해 보이는 풍경 뒤편에서는 요양보호사들의 손길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한 어르신은 아침부터 침대 옆 서랍장을 걷어차는 등 위험한 행위를 반복했고, 다른 직원은 언제 발생할지 모를 낙상 사고에 대비해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 곁을 상시 지켰다.

어제도 기저귀를 갈아드리다가 갑자기 얼굴을 맞았어요. 폭언이나 폭행이 종종 있는데, 어느 정도는 감수하고 시작한 일이지만 막상 겪으면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어르신들이 의지하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낍니다.
요양보호사 김진기(67세) / 대전 소재 요양원
어르신 인권은 당연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종사자들도 사람입니다. 발로 차이거나 꼬집히고 욕설을 듣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상처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요양보호사 이명옥(62세) / 대전 소재 요양원
이달의 경우 168시간을 채워야만 급여가 나온다. 1~2시간만 모자라도 전체 급여가 지급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요양원 관계자 / 급여 산정 구조 문제

요양보호사 대부분은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고 있다. 일정 기준 이상의 돌봄 시간을 채우지 못하면 급여 지급에도 제약이 생기는 구조다. 업무 강도에 비해 처우는 여전히 열악하다.

요양현장 악순환 구조
1
학대 의심
신고 증가
실제 학대 여부와 무관한 오인 신고 포함
2
종사자
심리적 부담
조사·민원 대응에 내몰리는 요양 인력
3
인력 이탈
심화
열악한 처우 + 낙인 위험으로 이탈 가속
4
돌봄 질
저하
그 피해는 결국 입소 어르신들에게
Chapter 03

선의가 학대로 둔갑하는 순간들
충청권 요양원 사례 모음

요양현장에서는 다양한 오인 신고 사례가 발생한다. 치매 어르신의 인지 왜곡, 노인성 질환으로 인한 신체 변화, 보호자의 과도한 책임 전가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사례 01 — 치매와 인지 왜곡
"휴지를 잃어버렸다"는 치매 어르신, 절도 신고로 이어져
입소 어르신이 갖고 있던 휴지를 스스로 놓고도 "누가 훔쳐갔다"고 주장해 신고로 이어진 사례. 골다공증을 앓던 어르신이 기침을 하다 갈비뼈가 부러지자 "학대로 인한 부상"이라며 병원비·간병비·위로금을 요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례 02 — 피부질환 오인
옴 진단 석 달 뒤 학대 신고… "치료 지원했는데도"
피부질환을 앓는 어르신이 입소해 노인성 질환으로 진단받고 치료를 진행했으나, 요양원에 전염병이 퍼진 뒤에야 '옴' 판정이 났다. 요양원은 지속적으로 병원 치료를 지원했으나 보호자는 학대로 신고했고, 기관 조사 결과 학대 사실이 인정되지 않았지만 수개월간 조사와 민원에 시달려야 했다.
사례 03 — 낙상과 학대 오인
침상 옆에서 넘어진 것도 "요양원이 방치했다"
낙상 사고는 요양원에서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안전 사고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침상에서 내려오다 넘어져도 "제재를 하지 않았다"며 학대로 신고되는 경우가 많다. 어르신의 이동권을 제한하면 '신체 학대', 이동 중 사고가 나면 '방임'이라는 모순된 구조다.
사례 04 — 3년 소송
무죄 판결 받아도 '학대 의심 시설' 낙인은 지워지지 않는다
A 요양원은 폐 질환을 앓던 어르신이 감기 증상 후 폐렴으로 입원하자 '방임' 신고를 당했다. 보호자의 5000만원 배상 요구와 함께 3년간 소송이 이어졌고, 겨우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관계자는 "소송비용 부담보다 '학대 의심 시설'이라는 이미지 타격이 큰 상처로 남았다"고 말했다.
요양원 — 인권보호, 안전한 돌봄, 신뢰와 소통
▲AI 제작 이미지
보호자는 녹음이나 사진 등 문제라고 생각되는 자료를 모아두는 반면, 기관은 돌봄 과정 전반을 실시간으로 입증하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요양시설의 특성상 외부에 모든 과정을 공개하기도 어렵고, 그 입증 부담이 모두 시설 쪽에 쏠려 있어요.
대전 C요양원 관계자
Chapter 04

노인과 종사자, 둘 다 지켜야 한다
전문가들의 제언

전문가 제언
"돌봄 종사자들이 케어 과정에서 느끼는 부담이 매우 큽니다. 현장의 '케어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합니다. 노인과 종사자 모두의 인권이 중요하며, 돌봄 종사자에 대한 사회적·정서적 지지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김소진 교수 — 중부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시설 투명성
"국내 케어시설은 여전히 개방적이지 못한 측면이 있습니다. 문제가 생길까 봐 폐쇄적으로 운영하는 경우가 있지만, 시설 스스로를 보호하고 종사자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일정 수준의 개방성이 필요합니다."
김소진 교수 — 중부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균형 잡힌 시스템을 위한 제도적 과제

🛡️
정당한 돌봄 행위 종사자 보호 장치 마련
선의의 돌봄을 수행한 종사자가 무리한 민원·신고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 2025년 도입된 '직원인권권익보호' 제도가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개선이 요구된다.
📋
돌봄 과정 입증 부담 완화
현재 학대 여부 판단의 입증 책임이 시설 측에 과도하게 쏠려 있다. 돌봄 기록 시스템 표준화와 제3자 검증 체계를 통해 입증 부담을 합리적으로 분산시켜야 한다.
🏢
요양시설 투명성·개방성 제고
폐쇄적 운영이 오히려 오해를 낳는다. 일정 수준의 운영 공개를 통해 신뢰를 쌓는 한편, 투명한 돌봄 기록이 분쟁 발생 시 종사자를 보호하는 증거가 될 수 있다.
💬
보호자·시설 간 소통 채널 강화
자주 방문하지 못하는 보호자의 불안이 오해와 신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보호자 알림 시스템과 정기 상담을 통해 신뢰 기반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
💼
요양보호사 처우 개선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와 엄격한 급여 기준, 폭언·폭행 노출. 인력 이탈이 결국 어르신 돌봄 질 저하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끊으려면 처우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
노인 인권 보호와 안정적 돌봄 제공은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두 가지를 함께 지켜낼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 우리 사회의 과제다.